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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택을 만드는 기술, 슈라이너 가공의 비밀

by 텍스타일 2025. 3. 27.

슈라이너 가공

 

 

빛은 표면에 따라 반응이 달라집니다. 매끄러운 유리창은 반사된 사물의 윤곽을 선명히 비추고, 거친 콘크리트는 빛을 산란시킵니다. 이 원리는 직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단의 표면이 얼마나 평활한가에 따라, 그 광택은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표면을 다듬는 섬세한 기술 중 하나가 ‘슈라이너 가공’입니다.

 

목차

 

광택이 고급스러움을 결정한다

 

옷감을 만질 때 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광택은 시각적으로 큰 인상을 줍니다. 과거에는 광택이 고급 소재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천연 면 중에서도 섬유장이 긴 피마면이나 해도면은 자연스러운 광택 덕분에 귀한 소재로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면은 그러한 광택이 부족했습니다. 이 때문에 머서라이징(Mercerizing)이라는 가공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공정은 수산화나트륨(NaOH)을 이용해 섬유 구조를 팽윤시키고, 그 결과 표면이 정리되어 빛을 더 잘 반사하게 됩니다.

 

마치 구겨진 종이를 펴면 빛이 반사되듯, 섬유의 주름을 펴고 정렬시켜 광택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일종의 화학적 다림질이라 할 수 있으며, 면의 물리적 특성과 광학적 성질을 동시에 개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직물에 광택을 주는 여러 기술들

광택을 얻는 방법은 섬유 단계부터 직물 완성 단계까지 다양합니다. 먼저, 섬유 자체에서 삼각형이나 이중 굴절 구조를 갖도록 설계하면 입사광의 굴절 방향이 조절되어 반짝이는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실의 꼬임 정도, 즉 강연사(twisted yarn) 또는 저연사 사용도 표면 빛 반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공 단계에서는 **모소(Singeing)**처럼 섬유 표면의 미세한 잔털을 제거해 광택을 높입니다. 열과 압력을 활용한 **캘린더 가공(Calendering)**은 고전적이지만 널리 쓰이는 방식입니다. 두 개 이상의 금속 롤러 사이로 원단을 통과시키며 압력을 가해 표면을 납작하게 눌러주는 방식입니다.

 

이 가공은 원단의 종류에 따라 명칭이 달라집니다. 면직물에 적용하면 **칭츠(Chintz)**, 화학섬유에 적용하면 **시레(Cire)**라 부릅니다. 특히 열가소성 소재인 폴리에스터나 나일론은 압력과 열에 의해 변형된 상태가 세탁 후에도 유지되므로 더욱 효과적입니다.

 

반면, 면섬유는 가공 후 물리적 변형이 쉽게 복원되어 광택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폴리혼방(T/C) 원단에서는 발색력과 광택이 함께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더 강한 광택을 위한 발상의 전환

슈라이너 가공은 캘린더 가공의 원리를 계승하면서도 한 단계 진화한 방식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압력의 분산’이 아닌 ‘압력의 집중’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스케이트 날의 원리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같은 무게라도 면적이 작으면 압력은 커집니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순간적으로 녹여 미끄러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압력 집중 효과 때문입니다.

 

1895년, **슈라이너(Schreiner)**는 이 원리를 직물 가공에 응용합니다. 그는 기존의 평평한 롤러 대신, 정밀한 가로줄이 새겨진 롤러를 고안했습니다. 이 줄무늬는 초미세 단위로 설계되어, 직물과의 접촉면에서 강한 국소 압력을 발생시킵니다.

 

이 작은 압력 차이가 원단 표면에서 광선의 반사 방향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고른 광택을 유도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 가공을 뛰어넘는 정교한 광학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줄무늬가 만드는 실크 같은 원단

슈라이너 가공의 핵심은 **엠보스 롤러**에 새겨진 미세한 홈입니다. 이 홈의 간격은 1인치당 약 600줄에 이를 정도로 정밀하며, 대부분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미세 패턴은 표면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가상의 '결'을 만들어냅니다. 이 결은 광선을 고르게 산란시키며, 시각적으로 실크처럼 균일하고 고급스러운 광택을 형성합니다.

 

동시에 섬유 간 간격이 줄어들며 촉감도 부드러워집니다. 광택과 소프트 핸드감을 동시에 개선하는 것이 이 가공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특히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처럼 반응성이 좋은 섬유에서는 더욱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패턴이 입혀지는 부분의 반사율이 균일해지면서, 드레이프성 또한 향상됩니다. 그 결과 의류뿐 아니라 커튼, 침구, 블라우스 같은 고급 직물에서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광택을 넘어 기능까지: 슈라이너의 또 다른 효과

슈라이너 가공은 단지 미적 목적만을 위한 기술이 아닙니다. 압력을 통한 표면 밀도 증가로 인해 **다운프루프 기능**도 동시에 강화됩니다.

 

다운프루프란 거위털이나 오리털 같은 충전재가 원단 틈을 통해 빠져나오지 않도록 막는 기능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고밀도 직조 방식이 필요하지만, 슈라이너 가공을 통해 낮은 밀도의 원단도 일정 수준의 다운 차단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원단에 표면 장력을 유도해 액체 흡수를 지연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초발수 가공과 결합하면 기능성 소재로서 활용도가 높아집니다.

 

이처럼 슈라이너 가공은 고급스러움과 실용성을 함께 충족시키는 **하이브리드 섬유 가공 기술**입니다. 표면에서의 빛 반사라는 작은 변화가, 사용자에게는 미감과 기능을 모두 제공하는 차별화 포인트가 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