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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수제, 친환경의 진짜 얼굴은?

by 텍스타일 2025. 3. 26.

발수제, 친환경의 진짜 얼굴은?

 

요즘 세제는 왜 이렇게 많이 짜야 할까요? 예전엔 한두 번이면 충분했던 주방세제도 이제는 서너 번은 기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거품이 잘 나지 않기 때문이죠. 친환경 세제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거품은 넓은 표면적을 만들어 오염 물질을 잘 끌어냅니다. 거품이 적으면 같은 세정력을 위해 더 많은 양을 써야 합니다.

 

결국 환경에 좋을지 몰라도 사용량은 늘어나고,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됩니다.

 

목차

 

친환경 발수제, 패션의 첫 실험대

 

패션 업계도 ‘지속가능성’이라는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도입된 것이 비불소 발수제, 즉 PFCs-Free 처리입니다. 미국 디자이너들은 이를 ‘C0’라고 부르며 새로운 기준처럼 받아들였습니다.

 

초기에는 철저한 관리가 뒤따랐습니다. 염색이 끝난 원단을 실험실로 보내 불소 성분이 남아 있는지 PPM 단위까지 측정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검출되면 출고를 멈췄습니다. 이는 유럽 기준보다도 강한 규제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소비자의 건강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 정책은 비교적 비용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복잡한 공정을 바꾸기보다, 소재 하나만 바꿔도 ‘착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짜 오염원인 화학 염색, 고온 처리, 대량 에너지 소비에는 손대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는 부분만 개선한 셈이었습니다.

 

적은 양으로 강력했던 불소계 발수제

불소계 발수제는 섬유 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소재입니다. 극소량으로도 탁월한 방수·방오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불소는 표면장력이 매우 낮은 물질입니다. 이 성질 덕분에 대부분의 액체를 튕겨낼 수 있습니다. 물뿐 아니라 기름, 알코올, 혈액까지 밀어내는 성능은 ‘Omniphobic’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실용적이었습니다. 옷은 쉽게 오염되지 않았고, 세탁 횟수도 줄어들었습니다. 세탁의 번거로움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소비자 만족도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불소계 화합물은 자연에서 거의 분해되지 않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생태계에 잔류할 수 있습니다. 일부 성분은 혈액이나 간에 축적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오며 규제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비불소 대체제의 숨겨진 문제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브랜드들이 비불소계 대체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들이 곧 드러났습니다.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초크 마크’였습니다. 옷을 손톱으로 긁으면 흰 자국이 남습니다. 이는 발수제를 과도하게 도포한 결과입니다.

 

비불소계는 불소계보다 효과가 약하기 때문에, 동등한 수준의 발수 효과를 얻으려면 두세 배 이상 많은 양이 필요합니다. 도포량이 많아지면, 외관이나 착용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불소계는 기름 성분까지 튕겨냈지만, 비불소계는 기름, 알코올 등에는 취약합니다. 물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어도, 기름 얼룩은 쉽게 스며듭니다.

 

결과적으로 옷은 더 쉽게 오염되고, 사용자는 세탁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친환경이라는 본래 목표와 모순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세탁, 지속가능성과의 역설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자원의 절약입니다. 특히 수자원과 세제 사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발수력이 약한 옷은 오염에 민감해져 세탁 주기가 짧아집니다.

 

과거에는 자주 세탁하는 것이 깔끔함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세탁이 환경을 해치는 행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세탁 과정에서는 미세 섬유가 배출됩니다. 합성 섬유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플라스틱은 하천과 바다로 유입되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또한 세제 잔류물과 오염수도 지속가능성에 위배됩니다.

 

비불소 발수제를 사용한 옷은 오히려 더 자주, 더 강하게 빨아야 합니다. 이는 에너지, 물, 화학약품의 사용량 증가로 이어지며 결국 더 큰 환경 부담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역설이 됩니다. 분해되지 않는 불소 대신 자주 세탁이 필요한 비불소를 택한 것이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여주기식 친환경, 진짜인가?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사례도 유사합니다. 빨대가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습니다. 하지만 종이 빨대는 상징적 아이템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문제는 종이 빨대가 결코 ‘종이답지 않다’는 점입니다.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코팅제와 접착제가 쓰이고, 이는 재활용도 어렵고 분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원과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플라스틱 빨대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고 친환경적인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눈에 보이는 변화, 즉 ‘보여주기’에 집중합니다.

 

발수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환경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진짜 오염원인 공정과 구조는 바꾸지 않고, 쉽게 교체 가능한 소재만 바꾸는 방식은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습니다.

 

이제는 소비자도, 브랜드도 ‘보여주기식 친환경’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