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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처럼 강하다, 강철도 섬유처럼 짠다

by 텍스타일 2025. 5. 3.

실처럼 강하다, 강철도 섬유처럼 짠다

목차

  1. 다리도 실로 짜는 시대
  2. 강철을 섬유처럼 쓰는 이유
  3. 실이 된 강철, 실이 되는 섬유

 

겨우 몇 줄의 케이블이 6차선 도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 믿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게는 수만 톤에 달하고, 길이는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데, 그 모든 하중이 단 몇 줄에 걸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줄은 단단한 강철이 아닙니다. 의외로, 거대한 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합니다.

 

건축과 섬유는 멀리 떨어진 분야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섬유’라는 개념 하나로 연결됩니다.

 

다리도 실로 짜는 시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현수교 중 하나인 금문교는 두 줄의 케이블에 전체 구조가 매달려 있습니다. 이 케이블의 직경은 약 1미터에 가까우며, 단단한 쇠파이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만 가닥의 강철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케이블 하나에 들어간 철선은 약 2만7000가닥. 하나하나의 굵기는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늘지만, 이들이 모여 하나의 초대형 로프를 이룹니다.

 

섬유공학에서 실은 여러 가닥의 섬유로 구성됩니다. 실이 너무 가늘면 직조가 어렵고, 너무 두꺼우면 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두께의 실을 만들기 위해 가는 섬유를 묶습니다. 케이블도 같습니다. 단단한 쇠막대 하나로 다리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유연하게 휘고, 늘어나고, 맞춰야 하는 공정에서는 실처럼 조합된 구조가 필요합니다.

 

무려 2만 톤 이상의 무게를 버티는 이 케이블도 본질은 섬유의 조합입니다. 철을 녹여 단단하게 뭉치기보다, 가늘게 잘라 유연하게 꼬아 만든 구조가 훨씬 유리합니다. 그 결과, 다리는 실처럼 유연하면서도 강철처럼 견고한 구조로 완성됩니다.

 

강철을 섬유처럼 쓰는 이유

우리는 흔히 실을 부드러운 것이라 여깁니다. 모, 면, 합성섬유 등이 떠오르죠. 그러나 실의 본질은 ‘가느다란 구조를 여러 가닥 모은 형태’입니다. 물질이 무엇이든 간에, 실로 만든다는 것은 매우 강력한 기술적 선택입니다.

 

강철이 섬유로 쓰인 대표적인 예는 바로 금문교 케이블입니다. 하나의 실로서 쓰이기 위해, 수천 가닥의 철섬유가 먼저 꼬이고, 다시 수십 합사로 구성됩니다. 이는 제직용 실이 만들어지는 방식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번거롭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유연성과 가공성’ 때문입니다. 하나의 굵은 줄은 운반도 어렵고, 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가느다란 철선을 수만 가닥 모으면, 묶기도, 늘이기도, 이동하기도 쉬워집니다. 설계된 위치에 정밀하게 고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면이나 폴리에스터 섬유가 실이 되고, 다시 옷이 되는 방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얻은 섬유가 너무 가늘기 때문에 실로 만들듯, 강철이라는 소재는 너무 단단하고 무겁기 때문에 실처럼 나눠야 합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적절한 형태’로 가공하기 위한 구조적 해결입니다.

 

실이 된 강철, 실이 되는 섬유

오늘날 섬유는 더 이상 부드럽기만 한 재료가 아닙니다. 탄소섬유, 아라미드섬유처럼 철보다 강하고, 무게는 훨씬 가벼운 신소재들이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우주선, 방탄복, 항공기 구조재에도 섬유가 사용됩니다. 이유는 단 하나. 섬유는 본질적으로 ‘길이 방향으로 강하고,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금속도 이제 섬유처럼 활용됩니다. 그 대표 사례가 바로 케이블입니다. 이 철선들은 전통적인 금속가공이 아니라, 섬유처럼 성형하고, 꼬고, 집합시켜 하나의 줄로 완성됩니다. 섬유와 금속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실이 여러 가닥으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기능성 때문입니다. 촉감, 광택, 유연성, 표면 마찰력 등은 섬유 가닥 수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의 굵은 실보다, 같은 굵기라도 더 많은 가닥이 있는 실은 더욱 부드럽고, 탄성이 좋으며, 피부에 닿는 느낌도 좋아집니다.

 

낚시줄처럼 단일 섬유로 만든 실은 매우 강하지만, 뻣뻣하고 부드럽지 않습니다. 결국 섬유를 실로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제조가 아니라, 성능을 조절하는 설계입니다. 금문교 케이블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강한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구조화된 실입니다.

 

 

결론

실은 재료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철이든 섬유든, 단독으로는 기능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가닥이 서로를 감싸고, 지지하고, 유연하게 연결될 때 비로소 실이 됩니다.

 

다리를 지탱하는 것도, 옷을 짜는 것도 결국 실입니다. 강철마저 실처럼 만들어야 했던 이유, 그 안에 섬유의 본질이 숨어 있습니다.